애연가들은 ‘밥은 굶어도 담배는 굶을 수 없다’고 한다. 해방 후 담배가 부족하여 배급제를 실시하자 꼭두새벽부터 번호표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서곤 했다. 피난 시절엔 길바닥에 버려진 꽁초를 주어 모아 궐련을 만든 사제 담배도 등장했다. 이도 구하기 힘들면 사전을 찢어 잎담배를 말아 피우기도 했다.
지금에야 흔한 것이 담배인심이고 또한 사람들이 만나면 의례 먼저 권하는 것이 커피나 담배다. 자연스럽게 권하면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담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사람들은 담배가 인간에게 해로운 것임을 알면서도 줄기차게 피워대며 그 중독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담배는 약효 때문에 보급되었다
담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하기 위해 항해 도중 남미 ‘바하마’의 ‘싼 살바툴’에서 현지 원주민(인디언)이 선물로 담배를 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후 담배는 유럽에 전파되었으며 담배 씨는 약재로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여자들도 배앓이 따위에 좋다고 생각해서 한때 많이 피웠고, 그래서 시골에 골초 할머니들이 많았다.
담배가 유럽에 소개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약효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1556년, 포르투갈이 1558, 스페인이 1559년, 영국은 1565년에 소개되었다.
리스본 주재 프랑스 대사인 장 니꼬가 프랑스의 여왕에게 담배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담배에 ‘니코티나’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유럽에서 세계 각처로 담배를 전파한 사람들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선원들이었다. ‘토바코’라는 명칭은 인디언들의 곰방대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6세기 말경 멕시코, 필리핀, 대만, 중국, 만주를 경유한 것과 또 한편으로는 러시아 사람에 의하여 같은 만주를 통하여 들어온 것이 있고 동(東)으로는 포르투갈 사람에 의하여 유럽, 인도, 인도네시아를 거쳐 일본을 통하여 도입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리하여 17세기 초기부터 일반인들에게 보급되어 한국의 장죽(長竹) 담배대가 생기게 된 것이다.
담배 대 소지와 함께 연초 재배로 자급자족하여 오던 중 한일합방(韓日合邦) 얼마 후인 1918년 조선전매제도(朝鮮轉賣制度)가 실시되어 새로운 제도 하에 포장의 형태를 갖춘 담배갑의 디자인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많은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도 다양한 종류의 담배 포장 디자인 출현으로 재료 적인 측면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장족의 발전도 있었다. 재정 수요의 충족수단인 전매제도의 이익에 우선되다 보니 디자인의 질 향상이 미흡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담배 포장은 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그 발전의 단계를 구분해 볼 수 있겠다.
일제 시대와 1945년 이후부터 1960년까지의 혼란한 사회와 경제적 여건 속에서 표현방법과 1960년에서 1970년 사이의 과도기적 사회 여건 또는 1970년에서 1980년까지의 경제 도약기, 1980년에서 2000년대까지의 안정된 사회 체제 속에서 경제성장과 국민 소득의 증대로 인한 대량소비에 접어들면서 포장의 고급화, 패션화 현상으로 발전하여 왔으며, 기호품의 일종인 담배는 소비자들이 개인 기호에 맞추어 상품을 선택하여 그들의 다양한 욕구에 대처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발전하여 왔다.
국내 담배포장 역사는 1945년부터
담배갑은 대부분 한 개피씩 10개나 20개씩 한 단위를 은박지나 금박지로 씌운 후 표면 디자인 된 겉 상자(case)에 담아 셀로판(cellophane) 종이를 부착시킨 것인데 이것은 개봉시 편리함을 위해 개봉 테이프(tear tape)를 둘러 밀봉시킨 것이다.
담배 포장에 있어서 셀로판 종이의 사용은 표면 디자인의 고급감과 습도 유지나 향의 보존 효과에 관련되는 품질 특성 또는 봉함(seal)의 조건에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특히 담배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은 담배의 맛에 민감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기능의 하나이므로 방습 포장(防濕包裝)은 상품 가치의 면에서 볼 때 절대적인 것이다.
국내에 우리의 기술진에 의해 포장담배가 시판되기 시작한 1945년 9월부터 현재까지 담배포장의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전히 담배는 종이로 포장되고 있다. 그렇다고 전혀 변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제품들처럼 포장 소재면에서의 큰 변화가 없었을 뿐이다.
1945년 8월15일 연합군에 의하여 해방을 맞아 미군정(美軍政)이 시작되면서 조선군정청전매국(朝鮮軍政廳專賣局)에서는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담배인 ‘승리’가 해방 직후인 9월에 최초로 제조 발매되었다. 표면 디자인은 담청색 문자 위주의 디자인으로 전면 외곽에 적색 라인을 배치한 10개피들이 담배갑이다. 한 면은 ‘승리’라는 한글 로고를 붓글씨체로 표기하였고 또 한 면은 영문 로고 ‘Victory’가 필기체로 표기되어 있다. 포장의 형태는 아래와 위의 모서리를 접어서 봉했으며 봉함지가 없다.
또한 영문으로 ‘전쟁의 종식을 기념한 전매국의 특별제품’이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있다. 이 담배갑은 우리 기술진에 의해서 제조된 최초의 담배라는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수준 이하라고 볼 수 있겠다.
그 해 12월에 소위 노인들의 곰방대(담배대) 용으로 장수의 상징인 학과 소나무를 담은 ‘장수연’이 발매되게 된다. 그 이후로도 풍년초(55.8~60.12), 수연(66.8~74.12), 학(74.4~88.12) 등과 같이 품질과 가격 등은 물론이고 디자인과 포장면에서 일반 담배갑과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서민과 노인대상의 일명 봉지담배가 출현하게 된다.
46년에는 ‘백두산’, ‘공작’, ‘무궁화’가 출시되게 되는데, ‘백두산’은 정상과 천지를 청색으로 나타내고 그 위에 백두산이라고 표기했으며 6·25 한국전쟁 중에는 ‘백두산’이라는 고무 도장을 새겨 갑 포장에 찍기도 하였으며 개피를 끈으로 다발로 묶어 공급하기도 하였다.
‘공작’담배의 경우 조선전매 초기에 일반 공모를 실시하여 당선된 디자인(이주국작)으로 일제 시대 말기에 쓰다 남은 헌 담배갑 뒷면에다 목판(木版)을 새겨 일일이 손으로 찍어낸 갈색 1도의 담배갑이었다. 이것이 시정되어 제대로 인쇄된 담배갑이 나온 것은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의 일이었다.
1948년 8월15일 ‘백구’와 함께 정부수립을 기념한 ‘계명’이 출시되었으나 불과 3개월 동안 빛을 보다가 사라졌다. 1949년 4월에 ‘백합’, ‘샛별’이 출시되었으며 그 해 5월에 국내 최장수 담배이기도 한 군용담배 ‘화랑’이 출시되었다. 6·25 동란을 겪으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민족 비극의 아픔과 대한민국 남성의 숫한 애환을 간직한 추억의 담배이다.
1947년부터는 은박지 속에 필터까지 달아 수 차례의 디자인 변경을 거치면서 애용되어 오다 1981년 12월 말에 사라졌다.
행정기구 개편으로 ‘전매국’이 ‘전매청(專賣廳)’으로 승격되면서 발매된 첫 담배는 1951년 12월에 출시된 ‘건설(建設)’이라는 담배다. 이 담배갑에도 ‘공작’ 이후 두 번째 공모 된 것이었으나 우수한 디자인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
1955년에 출시된 ‘백양’은 그때까지 상·하부 접음 봉합식 포장 방법을 탈피하여 봉함지(封印紙:seal)에 의한 봉합식으로 진일보 발전된 모습으로 등장했으며 이후 대부분의 담배가 이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1957년에 출시된 ‘진달래’는 북한의 국화(國花)가 진달래였다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같은 해에 출시된 ‘사슴’ 담배는 최초의 slide형 하드포장 형태를 갖추었다.
시대에 따라 담배갑 인쇄 수준 발전
그동안 담배갑의 인쇄 수준도 발전해 화려하고 선명해졌지만 포장의 형태 면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포장지는 거의 대부분 얇은 종이의 연 포장지였지만 ‘공작’의 일부분과 ‘재건’은 두꺼운 종이의 상자형 경포장 방식이 채택되기도 했다.
대부분 담배개피 수는 초기에는 10개피 단위가 많았으며 점차 20개피 단위로 포장되었다. ‘해바라기’의 경우는 특이하게 14개피 단위로 포장되기도 하였다. 해바라기 담배갑도 공산 국가의 국화(國花)라 하여 발매한지 몇 일 안 가서 자취를 감추었다.
1958년 1월에 선보인 ‘아리랑’은 1988년 12월까지 22년 동안 애연가들의 사랑을 받은 두 번째 장수담배이며 국내 최초의 필터(Filter) 담배이다. 전 것보다 개피가 15mm가 더 긴 소위 king size 담배였다. 이러한 조건이 붙여 나온 첫 번째 디자인은 표면상단 적색 바탕에 아리랑 로고를 우사체로 배치하였고, 하면에는 무녀도(舞女圖)를 동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장고를 응용한 기하학적 디자인이며 세 번째는 4색 인쇄의 바람개비 같은 상징성을 빨, 노, 파로 처리하여 한국적인 색조와 역동적인 디자인으로 변경하기도 하면서 1988년 12월까지 모두 6차에 걸쳐 표면디자인이 변경되기도 하였다.
중간에 제품 자체가 두 번이나 사라졌다가 다시 같은 이름으로 부활되기도 하였다. 아리랑은 우리나라 담배갑의 디자인을 한 수준 높이는 촉매제가 되게 한 담배이기도하다. 한 때에는 ‘아리랑’, ‘파고다’경우가 50개피들이 캔 포장으로 출시된 적도 있었다. 표면디자인은 20개피 담배갑과 동일한 것이었다.
‘아리랑’ 이후 필터 담배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게 되어 ‘금관’, ‘파고다’, ‘새나라’, ‘상록수’, ‘희망’, ‘신탄진’ 등 다양한 이름의 필터 담배가 꾸준히 출시되면서 담배의 질과 디자인이 점차 세련되기 시작하였다
1961년에는 5.16 혁명 후 국가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재건의 건설 의욕을 고취한 ‘재건’이 등장했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애연가이기도 하여 1970년 7월에 나온 ‘새마을’ 담배의 휘호를 직접 쓰기도 했으며 이 담배를 각별히 이용했다고 한다. ‘새마을’의 경우 중간에 몇 번 디자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22년 이상 장수를 누리기도 하였다. 박대통령 시절에 나온 ‘재건’, ‘새마을’, ‘새나라’, ‘상록수’, ‘희망’ 등에는 모두 “잘 살아보세” 라는 새마을 운동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1961년 1월에 발매되어 72년 4월까지 판매된 ‘금관’담배는 흡연가의 다양한 기호에 부합하기 위하여 당시 일부 상류층에서 은밀히 거래되던 미국의 ‘KOOL’, ‘SALEM’과 같은 박하(Menthon Fresh) 담배를 출시하게 되었다. 이는 과거로부터 지녀온 담배 맛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며 순하고 상큼한 맛을 선호하는 계층과 여성 흡연자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1년 8월 필터가 붙어 발매된 ‘파고다’담배갑의 디자인은 우측 부분에는 빨간색 면에 13층 석탑이, 좌측에는 금색 횃불이 대칭으로 그려져 있는데 빨강 배경색이 공산주의자들의 심벌색이라 하여 자주색으로 변경되었다가 결국 파랑색으로 지정되어 1963년 8월에 사라질 때까지 파랑색 담배갑을 고수하게 되었다. 당시 공산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한 시대적인 정치 상황들을 작은 담배갑 디자인에서도 엿 볼 수가 있다.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 외국 원수들이 담배갑에 7차례나 등장하게 되었으며 각종 국제회의(9회), 준공기념식, 등 몇 년 전에 없었던 크나큰 행사들을 개최하면서 기념 및 축하 광고가 유난히도 담배갑 속에 많이 기록된 해이기도 하였다.
1969년 말에 출시한 ‘청자’담배는 금박지에다 고려청자를 둘러싼 쌍 봉황을 디자인하여 엠보싱(Embossing) 기법과 동판 인쇄를 시도한 최고급 담배이기도 하였다.
그 후 원가 구조의 부담으로 금박지 대신 금색 오프셋 인쇄로 환원되면서 고급감이 감소되기도 하였다.
1972년 5월에 출시한 고급담배 격인 ‘은하수’담배가 금·은박, 녹색, 흑색 등 4색 인쇄로 화려한 디자인으로 변모하면서 ‘비둘기’, ‘한산도’, ‘거북선’, ‘명승’, ‘단오’, ‘개나리’, ‘남대문’, ‘수정’, ‘환희’ 등 수준 높은 디자인들이 최신 인쇄기기들에 의해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인쇄 기계의 발달과 4원색 분해에 의한 인쇄기법이 보편화되면서 사진촬영에 의한 표현방법이 일반화 되게 되었다.
1974년 7월에 출시한 ‘명승’은 관광지를 소재로 하여 종전 심벌화 된 이미지의 디자인을 사실적인 요소를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의 방법을 택함으로써 아름다운 명승지의 풍광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1980년 1월에는 ‘맨솔’, ‘청솔’, ‘홍솔’ 등 ‘솔’ 시리즈의 담배가 출하되기 시작했으며, 여성 애연가를 겨냥한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늘고 긴 120mm의 슬림형 Long Size 담배인 ‘장미’가 1982년 9월과 11월에는 ‘샘’과 ‘태양’이, 1988년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EIGHTY EIGHT’의 88계열, ‘도라지’, ‘백자’, ‘한라산’, ‘라일락’ 등이 출하되었다. ‘태양’은 당시 민족 감정을 일치하기 위하여 금색, 군청색, 녹색 등의 색조만을 택하여 오던 담배갑 디자인에 빨간색을 과감히 도입하여 국제적인 담배갑 디자인의 체계에 일치 시켰다는 점에서 하나의 전기와 특색을 가졌으며 포장의 형태로 셀로판 겉포장에 Flip-Top Carton 형태의 흰지 구조를 한 상자형의 제품을 탄생시키게 되었으며 최근 담배갑의 일반적인 형태로 정착시키게 된 모델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디스’, ‘오마샤리프’, ‘엑스포’, ‘글로리’, ‘겟투’ 등 영어 상표가 출시되면서 브랜드의 국제화가 대두었다.
1996년 1월에 출시된 ‘심플’은 세련된 멋을 추구하며 외국산을 선호하는 흡연 층을 대상으로 개발된 현대적 감각의 하이패션 담배이다. 또한 최초로 개발된 98mm형 담배이기도 하다.
2000년대에 들어와 담배의 수입 자유화와 경쟁력 강화로 인하여 초창기 담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디자인과 품질도 좋아지고 담배 산업도 성장했으며 다양한 브랜드와 종류들이 생산되었다.
담배갑 디자인은 신세대 감각 표현에 중점
담배갑의 표면디자인 면적은 전지 64절의 작은 공간이다. 이 작은 공간에 브랜드, 제조원, 개피 수, 경고문안, 아이마크, 한글과 영문의 배열, 컬러, 디자인 등 잡다한 기본 표기사항들을 고려해서 레이아웃 한다는 것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즈음 담배갑 디자인 추세는 신세대 감각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담배를 피우는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젊은층이 선호하면 장년층도 거기에 편승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Lucky Strike 담배갑 디자인으로 유명한 미국의 레이몬드 로위(Raymond Loway)에게 1951년 일본 전매청은 150만엔 이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피스(Peace)라는 담배갑의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 당시 대학 졸업자의 초봉이 2~3천엔 이었기 때문에 금액면에서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그가 인쇄상 가장 어려운 색조의 청색을 지정했기 때문에 일본 전매청이 그 색상에 맞추어 몇 번을 다시 인쇄하여 보였지만 그가 승인하지 않은 일이었다.
로위는 일본 디자이너들에게 일본에서 그 청색을 인쇄해 내지 못한다면 모든 디자인료를 돌려주겠다고 하면서, 디자인은 기술과 함께 발전하는 것이며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디자인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만약 일본 디자인계가 그것을 따를 수 없다면 영원히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시 그것을 받아들인 일본의 디자인 수준을 우리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될 것이다.
사회적·문화적인 면을 대변하는 외교 사절관
담배갑은 소비자가 항상 소지하고 다니면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개봉과 동시에 흡연으로 이루어지는 기호품이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할 때 케이스의 촉감 및 기능, 시각적인 효과, 고급성은 소비자의 Privacy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포장의 가치성은 우표 수집과 함께 국제적으로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인 면을 대변하는 외교 사절관과도 같은 위치에 있다.
수입 자유화에 따른 외국 담배와의 국제 경쟁력 제고와 건강을 생각하는 인구의 증가로 인한 흡연 층 감소에 따른 시대적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전매 당국은 독점 기업 형태에서 오는 안일성에서 탈피하여 보다 합리적인 마케팅 정책과 디자인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디자이너는 보다 창조적이며 개성적임과 소비자의 기호에 부응할 수 있는 디자인이 되도록 면밀한 계획과 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최충식 대구대학교 교수의 ‘옛포장의 기억속으로’중에서>
<월간 프린팅코리아 2003년 10월호 통권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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